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도시우스 2세 (문단 편집) === 즉위 ===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와 [[프랑크족]] 출신의 황후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사이에서 서기 401년 4월 10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위에는 누나로 [[아일리아 풀케리아]](Pulcheria)가 있다. 3세이던 404년에 어머니 에우독시아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고, 이어 아버지 [[아르카디우스]]마저 408년 병으로 30세/31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기에 겨우 7세의 나이에 즉위했다. 사실 아버지였던 [[부황]] 아르카디우스는 무능한 점에서 [[서로마 제국]] 황제인 동생 [[호노리우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그가 임종할 당시 나이 어린 자기 아들의 신상문제를 걱정해서 궁전 대신 중에서 섭정을 고르려고 하였으나 아내이자 황후 아일리아 에우독시아가 진작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또한, 서로마 제국 황제 호노리우스와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문제로 사이가 나빠져 있었고, 크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라는 판단에 고민하며 망설였다. 결국, 아르카디우스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몇 세기 동안 싸워 온 이웃나라인 '''[[사산조 페르시아]]''' 황제 [[야즈데게르드 1세]]에게 후견인이 되어 줄 것을 대담하게 부탁하기로 하고 사신을 보냈다. 이때 페르시아는 예상치 못한 제의에 영예로운 신뢰라고 하며 보답했다. 야즈데게르드 1세는 아르카디우스의 결정에 감사를 표하고, 그가 생존하는 동안에는 직접적인 적대관계였던 동로마 제국을 침공하려 하지 않았다. 동시에 아르카디우스는 궁정 안에서 나이 어린 황제를 성실하게 수호하고 훌륭하게 섭정으로서 통치를 도와줄 인물로 안테미우스(Anthemius)[* 훗날인 467년에 서로마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는 동명인(안테미우스 황제)의 외조부되는 사람.]을 선정하였다. 그는 405년에 집정관 겸 민정총독에 임명되었던 자로 탁월한 행정가이자 외교가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선택은 옳았다.]. 동시에 어린 테오도시우스 2세를 위한 또 다른 섭정으로는 2살 위의 누나 풀케리아가 9세의 나이에 선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